영어 공부란 결국 표현 외우기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회장님 역할을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다만 액수가 적을 뿐이다.”
그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만, 패러디를 해서 이렇게 말해 보고 싶습니다.
“세상에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표현을 덜 외웠을 뿐이다.”
영어공부, 아니 모든 외국어 공부는 결국 표현 외우기인 것 같습니다. 이 단순한 이치를 회피하며 여러 영어 공부법들을 기웃거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를 공부한 세월이 오래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드네요.
어떤 표현이 어떤 뜻인지 이해하고, 나중에 꼭 써 보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는 것보다 더 좋은 영어 학습법은 없어 보입니다.
이쯤 해서 여러분들은 아마 이런 의문을 제기하실 것 같습니다. “어디서 무슨 표현을 보고 외우란 말이냐?”
맞습니다. 어디서 무슨 표현을 보고 외울지에 대한 얘기 없이 ‘표현 더 외우세요’라고만 하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돈을 어떻게 벌지 말하지 않고, 통장 잔고를 높이라고 말하는 거나 비슷하겠죠.
그런데, 어디서 어떤 표현을 보고 외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영자신문 기자나 통번역사, 영어 전공 교수 등 영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모두 다른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 왔던 것들을 좀 적어 보려 합니다. 뒤돌아 보면 후회도 많은데, 본인만의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1단계로, 영어로 말하고 표현해 본 경험 없이 대학입시를 위한 독해 능력과 문제풀이 능력만을 배양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영문학과의 커리큘럼에 치여 영어에 대한 흥미를 크게 잃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원어민을 만나 실용 영어의 재미를 느끼고, EBS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일상 생활의 기본이 되는 소위 생활영어를 철저히 익혔습니다. 원어민과 일대일 회화 공부를 꾸준히 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영어 뉴스를 보기 시작하고, 아울러 코미디나 토크쇼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다소 무작정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영화 대본을 구해 한 영화를 반복해 보고, 영어 뉴스 보는 시간을 많이 늘렸습니다.
통역대학원에 입학하여, 각종 잡지와 연설문을 많이 보았고, 통역 스터디를 했습니다. 번역, 특히 한->영 번역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통번역 일을 좀 하다가,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회사에서 원어민 상사와 일하면서 영어로만 커뮤니케이션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뒤돌아보면 이 때 가장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잠시 원어민 선생님들을 리크루팅하는 일을 했습니다. 다양한 원어민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판사를 차리고 원어민과 함께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책을 만들며 계속 영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어로 된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고, 각종 관심사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는 일이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쉬운 것과 어려운 것,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이 뒤죽박죽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는 없으니 후회를 해도 소용은 없겠죠.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영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그 많은 시간을 들이고도 왜 여기까지밖에 못 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생깁니다.
제가 해 본 여러 방법들 중에서, 실제 원어민과 영어로 소통했던 시간이 가장 생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경험으로 미루어 본다면, 역시 영어는 영어권 국가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며 익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영어를 익힌다는 측면만 생각했을 때 그렇지요. 우리 삶이 영어 능력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기에, ‘외국으로 가세요’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죠. 저도 영어 능력만 생각하면 국내파로 머문 것이 아쉽지만, 외국 유학을 가지 않은 (혹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후회가 없습니다.
갑자기 맥빠진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만, 각자의 영어 공부 목표에 따라 필요한 학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기본은 ‘열심히 외우자’가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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